종교이야기

[스크랩] 요한계시록 강해 제5장 (하나님 보좌 앞에서의 심판)

바하1 2015. 5. 12.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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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 방주 교회

 


 

 

 4장에서 우리는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하나님의 보좌에서 찬양을 하는 모습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런데 5장에서도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들과 이십사 장로가 나오는 장면이 계속된다. 함께 연구하여 보자.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5장 1~10절>

 

 

1. 하나님의 손에 있는 책

 

위의 성경절을 읽어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 곧 하나님의 손에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 책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이 책은 무슨 책일까? 이 책은 우리 인류의 구속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책이다. 그런데 요한이 이 일곱 인으로 인봉된 책을 펴 볼 자가 없는 것을 보고 울자, 네 생물들과 장로들이 요한에게 어린 양이신 예수께서 이 두루마리를 열 것이라고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다음 예수께서 이 책을 받으시니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와 나중에는 천사들까지 합하여 주님을 찬양하는 일이 일어난다.

 

일곱 인으로 봉함된 이 책은 무슨 책일까? 일곱 인으로 봉한 이 책은, 유대인들이라면 다 알 수 있는 책인데, 그것은 땅 문서이다. 그것은 바로 이 지구의 땅 문서인 것이다. 인류가 죄로 이 땅을 마귀에게 넘겨주므로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이 땅을 원래의 주인인 인류에게 다시 회복시켜서 되돌려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원래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땅은 영원히 사고 팔지 못하게 되어 있다. 만일 가난하여 땅을 팔게 되었으면 희년 때까지만 그 소유가 산 사람에게 있었고, 그 후에는 원 주인에게 다시 되 돌려주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땅 문서를 만들 때에는 그 동네의 장로들이 증인들로 와서 입회를 한 후에 자기들의 인장들을 그 문서 두루마리 위에 찍어서 봉인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후에 그 땅을 다시 무르거나 매매를 하게 될 경우에는 그 증인들이 다시 와서 자기 인장들을 떼어 내면서 땅 문서를 다시 펼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 당시의 풍습이었다.

 

 

옛날 이스라엘의 풍습을 보면, 어떤 사람이 가난하여서 땅을 팔아 넘기게 되면,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그의 빚을 갚아주고 다시 땅을 사서 그 사람에게 도로 물러주었다. 그렇게 땅을 되찾아 주는 사람을기업을 무르는 자라고 불렀다. 예레미야 32장에 보면, 예레미야가 자기 조카 하나멜의 땅을 은 십칠 세겔로 물러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32:9,10,11,14,“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주되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되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취하여..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 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하라.” 땅 문서는 인봉한 것과 인봉치 않은 것 두 개 (하나는 원본, 하나는 사본)   있었다.

 

 

2.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셔서 우리의 기업을 무르는 자가 되셨다. 주님께서 당신의 보혈로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고 마귀로 부터 이 지구를 도로 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법과 규례를 따라서 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마귀의 고소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한 심판이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 죄를 다 대속해주셨지만, 그 대속을 받은 사람들이 정말 모든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고, 죄를 버리고 정결케 되었는지, 또 그 사람들이 다시 영원히 살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고 살 수 있는 성품이 준비되어 있는지 공개적으로 조사하고 심판하셔야 한다.

 

 

 

 

이때 그 증서에 증인들로 인을 친 그 증인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 증인들로서 미리 부활 당하여 혹은 살아서 승천하여 하늘에 올라가 있는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 주위에 있는 것이다. (: 에녹, 엘리야, 모세 같은 자들...) 그런데 보면, 그 책은 글씨가 안팎으로 써져 있고 일곱 인으로 봉하여진 것을 알 수 있다. 즉 더 이상 쓸 자리가 없을 때까지 충분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시다. 모든 정상과 입장을 철저히 알고 참작하시는 공정한 심판이다. 그래서 이십사 장로들 즉, 이 지구에서 죄 가운데 살다가 구속을 얻은 의인들을 데리고 올라가신 것이다. 증인들로 삼으시기 위해서... 그리고 이 장로들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죄에서 구속을 받아 의로운, 순종하는 자들로 변화된 증인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고소에 대하여 합당한 증거를 제시하셔야 지구의 구속을 끝내실 수가 있다. 십자가에서 구속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영광의 구름을 타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영원히 살도록 회복 시켜 주실 때에야 비로서 구속 사업이 완전히 이루어 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 성소에서 이 지구의 구속사업을 이루시는 때에, 하늘의 증인들, ,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와 천천 만만 천사들 앞에서 책을 펴실 때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공의롭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슬쩍 죄인들을 구원하여 데리고 올라가시는 것이 아니다. 온 우주 앞에 공개적으로 기록 책들을 펴시고 하나님의 판단이 옳은지 아닌지를 다 볼 수 있도록 심판하신다. 그 시람이 진실로 회개한 사람인지, 다시 하늘로 데려 와도 안전할 만큼 진실로 십자가의 은혜로 변화된 사람인지, 새로운 마음을 받은 자인지 살피셔야 한다. 변화된 증거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순종하는 품성이다.

 

 

 

 

3. 일곱 인을 떼시는 일

 

그래서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는 책을 펴시는 것이다. 그 문서에 있는 인들, 일곱 인들을 떼실 때마다, 이 지구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있는 사건들이 공개되고 심판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에 있는 팔복 가운데,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있다. 이 땅이 회복되고 우리가 그것을 기업으로 받는 일은 미래에 있을 것인데,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품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완전한 구속의 날이 이를 때까지 인을 떼는 일이 있을 것이며, 그 인들을 떼실 때에 일련의 사건들이 보여지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땅을 완전히 구속하실 날이 점점 가까와 오고 있다. 일곱 인의 사건들은 일곱 교회의 시기들과 동일하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일곱 째 인의 시대에 살고 있다. 21:28,“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다시 강조하자면, 이 지구의 땅 문서를 떼실 때에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는지, 정말 하나님의 백성 같은 마음들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이 마귀에게 속한 자들인지,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인지, 땅을 회복할 때에 그 속에 있는 백성들이 누구에게 속한 자들인지 먼저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조사를 계시록 22 11,12절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심판을 집행하기 전에 먼저 조사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요한이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 손에 있는 그 책을 펼자가 보이지 않으므로 크게 울었다. 그것은 이 지구의 운명이 달린 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 때 장로 중 하나가,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인을 떼시리라고 말한다.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 양, 그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상처를 가지고 계신다. 우리를 위하여 찔리시고 못 박히신 사랑의 상처를...

 

 

4. 일곱 눈과 일곱 뿔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 5:6). 일곱 뿔, 일곱 눈은 능력과 모든 것을 아는 지혜가 있으심을 상징한다. 또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일곱 영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 구원 받을 수 있는 모든 자들을 살피시고 도우신다는 표현이라 하겠다.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쓰시고 태어나, 모든 시험과 유혹을 견디시고 승리하신 예수님만이 심판자가 되실 수가 있다. 4:15,16,“우리에게 있는 대 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 갈 것이니라.”

 

우리와 같이 되셔서 이 땅에서 살아 보신 예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 줄을 아신다. 동시에 공평한 심판자가 되실 수가 있다. 고후 5: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7:31,“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온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5:22,27,“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책을 취하시자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 그리고 온 하늘 천사들이 찬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이 찬양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요한계시록 5장 11~14절>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인봉 하였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기를....유다지파의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5:1-5)

 

지금까지 요한사도는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요한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책에 기록된 대로 다스려질 하나님의 통치방법도 보았다. 책에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섭리의 방법이 말씀하신 대로 진행되는 내용으로 기록된 책이다. 이 책에 기록된 초안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이었는데,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인간들이 알아야 할 일부분을 요한에게 주시고 기록하여 신앙생활을 하게하시고 그 외의 부분은 지금까지 감추었던 것을 요한을 통하여 알려주신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하여 모든 것을 알려주시면서 종말에 대한 내용은 공개하지 못하도록 봉하셨으나, 이제 요한을 부르시고 봉함된 내용을 공개하려는 목적으로 요한을 그 보좌 앞까지 끌어올리셨다고 하신다. 그러면 요한에게 알리시려는 비밀은 무엇인가?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시지 않았던 비밀, 곧 창세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있었던 비밀은 하나님의 영광에 속하였고 그것을 알려줄 때와 시기가 이제는 되었기에 요한에게 지시한다.

 

요한에게 알리시려는 비밀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책이다. 이 책속에 무엇을 써 두셨기에 일곱으로 봉하였는가? 이 비밀은 하나님의 섭리로 대환난후에 영원한 세계로 이어질 하나님의 계획일 것이다. 계시의 초점은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성자께로 옮겨가는 두루마리에는 말세에 되어 질 내용을 일곱으로 봉해졌으며, 그 책을 떼시는 성자를 어린양의 모습으로 보여주신다.

 

그 중간에 천사의 외침과 요한의 울음과 장로의 위로 등이 소개된다. 또한 어린양이신 성자 외에는 책을 공개하지 못한다고 한다. 절대 심판자이신 예수 외에는 누구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문의 중요성은 대환난 때에 되어 질 내용이 쓰여 진 책은 비밀로 되어있다.

 

 첫 번째는; 천사가 이것을 공개할 수 있는 적격자가 누구냐고 외친다.

 두 번째는; 하늘 위에나 땅위에나 땅 아래에 있는 누구도 떼거나 볼만한 자가 없다고 요한 이 울었다.

 세 번째는; 이 책을 뗄 수 있고 공개할 수 있는 적임자는 어린양 예수라고 장로가 요한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1. 하나님의 손에 있는 책

 

요한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한 권의 책을 보게 된다. 이 책은 안과 밖, 양면에 도장이 찍혀있으며 아무도 볼 수 없도록 일곱 겹으로 봉해졌다. 천사는 이것을 펼쳐볼 자가 누구냐고 큰소리로 외친다.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까지 들리도록 큰소리로 외쳤다는 말이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씀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하라. 많은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4)

 

다니엘서 전체를 찾아보면 하나님의 비밀은 2장에서 당시에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된 내용으로 기록된 느브갓네살 왕의 꿈에서 본 내용이다. 7장에서는 네 짐승과 열 뿔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장래를 예언하였다. 그리고 9장에 기록된 70이레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죽으심에 관한 비밀임을 알 수가 있게 된다.

 

이처럼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기록된 세계적인 종말에 관계되는 비밀이므로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천사들까지도 그리스도가 고난 후에 얻으실 영광의 때가 어느 시, 어느 때를 말하고 있는가를 상고하였다. 이러한 단면만을 보았던 사람들은 묵시는 인봉된 것이니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평생을 계시록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지도자들이 많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이사야는 경고하기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면서 읽어보라고 말하면 대답하기를 봉되어있으므로 나는 못 하겠다 하고, 무식한 자에게 읽어보라고 말하면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라”(사29:11~12) 하였던 말씀을 깨달아야 된다. 이사야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저들에게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부으셔서 눈이 감기게 하기 때문에 모든 묵시가 그들에게는 마치 봉한 책과 같다”(사29:10) 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종말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내용을 알 수 없으므로 봉하여진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에 넘어와서는 요한계시록을 자세하게 기록하도록 하면서 봉하지 말고 공개하라 하였으므로 오래전부터 비밀한 책이 떼어졌음을 깨달아야 된다. Open되었기 때문에 요한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목자)들에게 보이시려고(계1:1)” 읽어보라고 지시하였다.

 

요한은 계속하여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22:10)” 하셨으므로 인봉되었다는 주장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주장하게 되면 오히려 ‘보라고 지시한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가 크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1장1절에서 보라고 ‘지시(σηλαίνω-세마이노)’하신 말씀과, 창세기 2장16절에서의 ‘명(ה??-촤와)하여’처럼 최고의 ‘명령’이라는 사실이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하나님의 절대명령에 순종하지 않아서 죄가 들어왔다. 그렇다면 같은 하나님께서 보라는 계시록을 읽지 아니한다면 절대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는 아담과 동일하다고 경고하셨다. 다만 차이점은 아담의 불순종은 그가 인류의 조상이기 때문에 온 인류에게 해당되고, 계시록을 읽지 않으면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어 행하는 자들’이라 하였으므로 해당되는 사람에게만 죄가 된다 하셨다.

 

천사의 외침은 어느 피조물이라도 스스로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며 실천하기에 합당한 자라고 생각된다면 앞으로 나와서 하여보라고 외쳤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오직 어린양이신 예수만이 종말을 말할 수 있고, 그가 읽으라고 지시한대로 읽게 되면 그분이 종말에 관해서 알려주신다.

 

하늘위에도 없다는 뜻은; 하늘과 땅위에 있는 자들 중에서 아무도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 비록 하늘위에 있는 천사들이라도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봉사하고 있을지라도 이것만은 할 수 없다. 피조물로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땅위에도 없다는 뜻은; 아무리 훌륭하고 현명하고 또한 능력자나 점쟁이라도 할 수 없다. 선지자들도 자기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보일 수 없는 것과 같이 땅위에 살고 있는 어느 피조물이라도 이일을 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땅 아래에도 없다는 뜻은; 타락한 천사들도 할 수 없고, 음부에 가있는 죽은 영들도 할 수 없고, 사탄이 어떤 술책을 쓴다 할지라도 할 수는 없다. 피조물로서는 펼 수도 없고 보지도 못하고 읽을 만한 존재는 하늘위에나 땅위에나 땅 아래에 있는 자로서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1. 요한의 슬픔과 눈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없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5:4)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고 그 마음과 뜻을 알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의 소원이 성취될 수 없기 때문에 슬픔에 잠기게 되고,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나오게 되니 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요한의 심정을 이해하여야 한다. 요한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주님을 따라다닌 12사도들 중에서 주님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사도였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어디로 가든지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사도였다. 다볼(변화)산에서 엘리야와 모세를 만날 때도 주님과 함께 올라갔다. 고뇌의 기도로 밤을 새운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도 십자가 밑을 떠나지 않았다. 주님의 부활소식을 듣고 제일먼저 무덤으로 달려갔던 사도였다. 모든 사도들이 순교당할 때 요한역시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에 들어가야 했다.

 

인내의 말씀 때문에, 부활의 복음 때문에, 장차 얻을 영광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주님을 배반하지 않으려는 신앙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아온 요한이다. 이러한 일을 지켜보신 주님께서는 그를 죽음이 주장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일로 인하여 밧모 섬에서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밧모 섬의 생활은 괴로운 삶이었으며 아픔의 삶이었으며 고통의 삶이었다. 밤이면 추위가 엄습해왔을 것이다. 덮을만한 것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다. 동굴 속에서 짚북데기만이 깔려있는 자리였다. 하루 세끼도 찾아먹지 못하는 굶주림의 창자를 부여잡고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는 기도뿐이었다. 이 모든 고통도 주님을 위해 참아야했고 참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만 했다.

 

이럴 때에 알파의 하나님, 오메가의 하나님, 이제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 전에도 계신 하나님, 장차 오실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시고 황금 띠를 띠고 불꽃같은 눈으로 일곱 금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예수께서 오셨다. 오른손에는 일곱별을 붙잡고 두려워말라고 위로하여 주시던 예수님이시다. 앞으로 되어 질 일들을 보여주고 알려주려고 하늘로 끌어올려 주셨다. 그런데 이 책을 읽거나 볼 자가 없다하니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중요하다. 요한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할까하는 마음으로 크게 울었다면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많은 사람들이 대 환난에 남지아니하고 좋은 날을 보도록 외침과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 땀 흘리는 간구가 있어야 한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주의 뜻을 이뤄보려는 눈물의 기도를 주님은 바라고 계신다. 밤마다 제단 앞에서 흘리는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이웃을 위한 기도, 민족을 위한 기도, 세계를 위한 폭넓은 기도를 주님은 바라고 계신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기도는 주님은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신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 기도는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주님의 말씀은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때가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부탁하셨다. 내가 살기 위해서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더라도 너희가 살수만 있다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죽을 수 있는 기도를 부탁하신다. 이러한 기도는 아름다운 향내를 내면서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상달된다는 것이다.

 

2. 헛되지 않은 눈물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맣라되 울지 말라. 우다 지파의 사자 다읫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일을 떠시리라 하더라.”(계5:5)

 

요한의 울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위로하여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기를 “울지 마라,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일곱 인을 떼시리라”는 응답을 받았다. 좌절하고 실망에 빠졌을 때 포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한 적극성이 있을 때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만물을 심판하실 주님이 어째서 못하겠는가? 하실 수 없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실 수 없다.

 

이사야 11장 1-2절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실’ 예수님에 대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셨다. 이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그가 우리 주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교회들을 위하여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신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하늘 위에나 땅위에나 땅 아래 있는 어느 피조물로서는 못할지라도 전능하신 우리 주님만은 하신다. 사람의 생각과 능력으로는 못할지라도 계획하고 진행하시는 그 전능자가 왜 못하시겠는가!

장로의 위로는 우리들에게 좋은 경종을 주신다. 요한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재림을 갈망하며 기도하는 우리들에게도 같은 위로의 말씀임에 틀림없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이제후로는 나를 위한 의의면류관이예비 되었는데, 그것은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나에게 주실 것이다. 나에게만 아니라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주신다”(딤후4:8)고 하였다.

 

큰 소리로 우는 눈물의 기도를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하여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보이셨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에 심히도 급하다고 말하는 현재라는 이 시간을 아껴야 한다. 요한과 같은 기도 자가 되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경고의 말씀을 외면하고 있다. 알면서 외면하는 것은 불순종의 죄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죄는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실 때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가 있다” 하셨다. 발락(ק??)왕이 발람(ם???) 선지자를 초청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기도하는 발 람에게 ‘가지 말라’ 하셨다. 그러나 물질에 눈이 가리어진 발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했다. 택하신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다.

 

발람의 교훈을 받은 족장들과 방백들은 육적인 문제만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행동으로 죄를 지었다. 그들의 불순종의 대가는 하루에 24,000명이 떼 죽임을 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는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사람인 발람의 말을 듣고 행하였기 때문에 불순종의 죄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도 주님은 영적 가나안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하시는데 사람들은 기도는 하지 아니하고 물질에 눈이 가리어져서 자신의 영이 이스라엘 방백들처럼 죽어가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죄를 범하게 됨으로 대환난 때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노아 홍수 때와 당신의 임하심을 어떻게 경고하셨는가?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집을 지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다”고 경고하셨다. 노아의 때도 이 보좌에 앉아계시는 주님의 입에서 나온 경고였고 요한에게 때를 알게 하시는 말씀도 같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경고이다.

 

중요한 말씀은 하늘 위에서와 땅위에서와 땅 아래 있는 어느 누구도 이 비밀을 아는 자가 없었다. 오직 어린양 되신 예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마지막 세대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일곱으로 봉해진 두루마리 책을 편다는 것이다. 인을 떼기를 원하는 천사들과 장로들은 어서 이루어지기를 찬양하였다. 그분이 인봉된 책이 열려지면 무서운 대환난이 시작되므로 알곡과 같은 신자들인 신부들만이 들림을 받게 된다.

 

이 대열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일은 요한과 같이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된다. 나의 아집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된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복종시킬 수 있는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의 내용은 바로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대로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함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된다.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된다. 우리가 들림 받으려면 남의 잘못과 허물을 덮어주어야 된다. 남의 죄를 용서하여 주어야 나의 죄도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 내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면 절대로 들림 받지 못한다. 형제의 죄를 용서하여 줄 수 있는 심령이라야 악함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

 

완고한 심령은 남을 정죄할 뿐이지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남을 용서하는 사랑과 관용이 있는 심령에게는 마귀가 틈타지 못한다. 그래야 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므로 입술로만 부르짖는 기도가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눈물의 기도가 따라야 된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다. 예수 이름의 권세와 보혈의 권세를 가진 사람은 두려움이 없어진다. 이러한 기도라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면 주님이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신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올라간다

 

 

 

 주의 재림을 찬양하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셨는 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5:6~)

 

지난주에 요한이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올라가서 장차 되어 질 일에 대하여 공부했다. 인봉한 책을 떼기나 볼 자가 없기로 요한이 크게 울고 있을 때 장로의 말대로 다윗의 뿌리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하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으리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상고하였다.

 

이 기쁨을 나누는 내용이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아버지의 오른 손에서 책을 받을 때 천사들과 24장로들이 새 노래로 찬양하였다. 모든 만물들도 찬양 드리는 이유는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기 때문이라 하셨다. 또한 이 기도를 받으신 주님께서 어두움의 권세를 멸하시고 하나님의 질서가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시는 어린양에게 기쁨으로 찬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시고 그것들과 그 가운데서 살고 있는 인류를 어찌하여 멸하시는가? 반문하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의 뜻한 바를 조금이라도 깨달으려하지는 아니하고 자신의 편리대로 생각하면 그러한 의문을 갖게 된다. 또는 이 세상에 몇 만대를 살 것처럼 집 짓고 재산을 모으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으로부터 그러한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먹고 살자고 밤낮으로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고 부를 축적하여 안일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만물을 멸하시면 지금까지 내 재산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나오는 말이다. 다른 면은 세상재물만 생각하고 밤낮 뛰다보니 하나님의 뜻은 하나도 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멸망당할 것을 생각하니 불안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다.

 

하나님은 수천 년이란 오랜 세월을 참으셨다. 주님께서 오시게 되면 만물을 멸하신다고 사도들을 통하여 알려주셨다. 천사들도 올라가신 그대로 오신다고 기록된 성경으로 알려주셨다. 그런데 눈이 가려지고 완악한 마음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 알려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시키려고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리시면서 깨어서 근신하고 때를 알고 준비하라 하신다. 그런데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으면서도 성경에 쓰여 지지 않은 인간인 목사의 말은 잘 듣는다. 자기주장만 앞세우고 있으니 그날 대 환난에 남겨졌을 때 누구에게 원망할 것인가.

 

진정으로 예수의 사랑을 깨닫고 아버지의 섭리를 알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실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고집과 아집 때문에 멸망의 대 환난을 당한들 어느 누가 불쌍히 여기며 가련하다고 위로해 주겠는가! 곧 인봉을 떼기만 하면 대 환난은 시작될 것이다. 봉해진 책이 그리스도에 의해 개봉되려고 그의 손에 옮겨진 것을 요한은 보았다. 두렵고 떨리는 순간이다. 대환난의 시작이 되므로 두렵고 떨리는 순간이다.

 

실제로 이일은 있게 될 것이며 곧 시작될 것이다. 이일은 어떤 공상이거나 허탄한 말로 만들어낸 이론이 아니라 심판 주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요한을 통하여 지금도 말씀하셨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으며 나의 영원한 거처가 어디인가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한다.

 

일찍 죽임을 당하신 예수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5:6)

 

예수님은 죄악으로 죽게 된 인류를 구하시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도하셨다. 그런데 선택을 받았다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오신 주님을 죽는데 넘겨주었다. 목이 곧고 마음에 할례 받지 못한 교만 때문에 주님을 죽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많은 선지자를 보내면서 메시야의 길을 알릴 때마다 톱으로 켜서 죽였고, 돌로 때려죽였고, 끝내는 메시야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께서 재난이 쓰여 진 책을 개봉하려고 하신다. 지금도 여러 경로를 통하여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알려주면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이지는 못할망정 종말을 전하지 못하도록 죽이려는 행위가 어쩌 옛날과 다르지 않다고 하겠는가?

 

예수께서 어떤 사람들이 이러한 불법을 행하고 있는지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다.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통해서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는 있어도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는 전능자의 눈은 속이지 못한다고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하셨다. 이처럼 만물을 멸하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 그분이 어째서 자신이 계획하고 진행할 일들을 모르시겠는가? 하늘의 천사들도 장로들까지도 인봉된 책을 빨리 떼어주시기를 원하면서 찬양을 드린다. 지금 하늘에서는 봉해진 것을 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주님께서 오실 때 함께 올 나팔수 천사들이 나팔을 불 준비를 끝내고 대기 중에 있다. 신부들에게 입힐 세마포를 만들며 또 입혀주는 기간이다.

 

그런데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들은 아들도 모른다면서 주님의 전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모른다고 고집할지라도 주님은 당신의 계획대로 때를 아신다. 조만간에 그분이 나타나면 준비한 신부들은 다 데려가신다. 반대하며 부정하며 준비하지 아니한 자들은 대 환난에 남겨서 연단을 통하여 온전하지 못했던 믿음을 깨닫도록 할 것이다.

 

대환난의 고통은 눈물의 환난이요, 아픔의 환난이요, 배 고품의 환난이 될 것이다. 들림 받지 못하고 이 땅에 남는 자들이 당해야 되는 고통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창세후로 전에도 없었고 후일에도 없을 대환난이 될 것이라 하셨다.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주의 재림을 무시하고 조롱하며 부정하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은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은 사람” 이라고 하였다.

 

이성이 없기 때문에 짐승과 같이 구원사역을 훼방한다. 자신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훼방한다고 성경은 교훈한다. 짐승은 사람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귀를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불에 들어간다고 성경은 경고한다.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었다 하는 말이,”(벧후2:22)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여기에 대하여 베드로는 이렇게 증거 했다. 여기에 해당되는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말)이 어디 있느뇨”할 것이다. 그들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가운데서 행하는 자들”이라 했다. 또 그들은 “호색을 좋아하고 탐심이 많아서 거짓으로 말을 한다.” 또한 그들은 “본래 잡혀죽기 위하여 태어났고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은 자들”이라 했다. 짐승은 주님의 재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훼방한다.

 

하나님께 올라가는 기도

 

각 족속과 백성들과 나라 가운데서 예수를 위해 죽어갔던 성도들의 기도는 아름다운 향으로 변하여 하나님께로 올라갔다고 증거 한다. 일찍이 세례 요한이나 스데반도 예수를 증거 하다가 피를 흘리고 죽었다.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제자들도 죽었고 교부들도 그랬고 선진들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다가 피를 흘리며 죽었었다. 세계 곳곳에서 종족이 다른 족속들과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위해 죽었다.

 

수많은 선교사들이....복음을 전하던 목사들이....성도들이 모두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예수의 부활을 외치다가 피를 흘리며 죽었다.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없는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으므로 피 흘리며 부르짖는 기도는 아름다운 향으로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이것은 골고다에서 흘려주신 예수님의 피의 대가였다. 나를 위하여 죽어주신 주님을 생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된다. 이런 자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고, 제사장을 삼으시고 장차 왕 노릇을 하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1장6절에서 공부한 내용이다. 아무리 구원을 받았네, 예수를 믿네 할지라도 이 땅에 남아서 대 환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은 버린다고 호세야 선지를 통해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못하게 한다.” 너를 버리고 제사장이 되지못하게 한다는 말씀은 이 땅에 버려두어서 대 환난을 당하고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과, 받지 않으려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된다.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려고 죽임을 당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장자의 총회에 참여하는 권세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아들의 자리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나라 제사장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군가를 분명히 알고 그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분의 사랑을 받는다. 이런 사람에게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하늘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땅덩어리만 있으면 나라인줄로 알 것이다. 땅덩어리가 아무리 많고 커도 사람이 없으면 ‘나라’ 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도 천사들만 있어도 안 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이 있어야 되고, 하나님의 속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피로 사셨다. 이처럼 엄청난 사랑을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주시는 예수는 지금도 사역하신다.

 

학자들 간에는 벧전2:9의 말씀에서 제사장을 만인제사장이란 의미로서 하나님의 나라인 하늘이 아니라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하늘나라 제사장으로 삼으신다 하심을 깨닫고 항상 감사해야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두 가지 사명을 알아야 된다.

 

첫째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한 제사장이 되어야한다. 모든 허물과 어려움과, 약점과, 고통을 내가 지고 매

           일 기도하며 헌신하는 생활이다. 구약에서 제사장들은 자기와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과 같은 삶이되어야 한다.

 

둘째는; 구약 제사장들은 주의 성전에 모여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나아가서 전하는 직임

           이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제단 앞에 모여서 자기와 타인을 위하는 기도가 있어야 된다. 헌

           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복음을 교회 밖으로 나아가서 사람들에 전하는 일이 제사장의 사명이

           하늘나라의 제사장이 되는 일이다.

 

또한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라고 약속한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부활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 다시 와서 열 고을(각자 보상)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보실 때 합당한 삶을 살아야한다. 합당한 삶으로서 나의 허물이 없어져야 되고 죄악에서 떠나야 된다. 담대함을 가지고 악을 물리치고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여 언제나 승리하는 삶이되어야 한다. 그래야 성령과 교통함이 있게 된다. 성령과 교통하는 사람은 예수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삶속에서 고통이 물러가고 병마가 물러간다. 저주가 물러가고 희락이 넘치며 기쁨 속에서 항상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일만 있게 된다.

 

천사들의 찬양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 만이요 천 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 하도다 하더라.”(5:11-12)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피의 대가로 하늘나라 백성을 삼으시고 제사장을 삼으시고 장차 왕노롯 하도록 허락하신다. 주님의 은혜에 대하여 천사들은 찬양 드리며 천사들의 수는 만만이요 천 천이라 하셨다. 숫자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수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하늘나라의 모든 천사들을 뜻하는 내용이다. 천사들의 외침 속에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능력과 부를 찬양하고 지혜와 힘을 찬양한다. 존귀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찬양하고 있는데 찬양 속에는 무한한 속성을 나타내주는 내용이다.

 

어린양의 능력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다. 하늘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나 땅위에 있는 그 어떤 존재나 땅 아래 있는 그 어느 피조물일지라도 예수의 능력까지 도달할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에게는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은 부자라고 하신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자가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의 부에는 따를 자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세계가 주님의 손에 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 천국의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다 하였고 아버지의 것이다 내 것이라 하신다. 이토록 부자이신 우리 주님께서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하시고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는 말씀이다.

 

지금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신부를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삶을 살고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셋째하늘에 집을 짓고 있다. 그분의 지혜와 능력으로 짓는다. 나무나 시멘트로 짓는 것이 아니라 정금과 보석으로 짓고 계신다. 예수님의 능력과 지혜와 힘보다 능가하는 존재는 없다. 마귀가 아무리 방해할지라도 그분의 능력으로 멸하게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재림을 찬양하고 사모하는 성도에게 영원한 축복이 있다고 성경은 교훈한다.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8)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영광을 받게 되실 분은 오직 어린양이라고 천사들은 찬양한다. 이토록 뭇 천사들이 찬양할 때 모든 만물들도 영광으로 찬양 드린다. 하늘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이 찬양으로 영광을 드린다. 이때 네 생물들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한다. 모든 동식물들이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어린양께 존귀와 영광을 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존귀하신 어린양을 만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성도의 온전함을 나타내야 된다고 요구한다. 신자가 어린양 예수를 만나고 그의 신부가 되려면 마음이 찬양으로 넘쳐나야 된다. 요한도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으로 찬양하였다. 시편기자는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하였다. 시편 146편부터는 찬양으로 꽉차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들의 영혼이 여호와를 찬양하고 우리들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고 우리의 평생에 하나님께 찬양할 때 주님은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그분의 능력을 찬양하고 그분의 지혜를 찬양할 때 고통이 떠나가고 깨끗한 세마포를 얻게 된다. 찬양은 질병이 물러가고 가난이 물러가고 마귀가 물러간다. 저주의 권세가 물러가고 훼방이 물러가고 흑암의 권세도 물러간다.

 

하나님은 찬양의 보좌에서 찬양을 받으시고 회중이 찬송할 때 능력으로 나타내신다. 말씀이 있으면서 실천하는 신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복이 있다. 사랑이 있으면서 순교가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다. 모임이 있으면서 역사가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기도가 있으면서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영원한 시온의 복이 주어진다. 범사에 감사하면서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너희 죄 흉악하나 포함 9곡 모음

 

 

01 너희 죄 흉악 하나. 찬255 
02 예수 나를 위하여. 찬144장  
03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찬531장   
04 십자가로 가까이 찬439장    
05 주께로 한 걸음 씩 찬532장    
06 저 죽어 가는 자 다 구원하고 찬498장 
07 나의 갈길 다가도록 찬 384장   
08 나의 영원 하신 기업 찬 435장 
09 주 만 바라볼지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 지셨습니다

 

당신도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But to all who received him, who believ ed in his name, he gave power to become children of God;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And they said,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 you and your household."

 

당신도 예수를 믿으면 천국갑니다.

If you believe in Jesus to go Heaven.

당신은 천국의 영원한 영광으로 초대되었습니다

You have been invited to the eternal glory of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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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약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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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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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청년반

매주일 오후 1 : 30

수요 저녁 예배

오후 7 : 00

마데테스반

매주 화요일오전 10:30

금요철야 기도회

오후 9 : 00

크로스웨이반

매주 수요일오후 5:00

매일 저녁 기도회

오후 7 : 00

구역장반

매주 수요일오후 2: 00

안드레 전도대

매일오전 10 : 00

새가족반

매주 토요일 오후 2:00

   

직장인반

매주 토요일오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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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남기신 분 모두

 

출처 : 청계 방주교회
글쓴이 : 샬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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